테스트 하면서 마음에 들었던 지문 몇 개 올립니다...
목울대가 꿀꺽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켄지는 입술에 문 담배 필터를 질겅이며, 맥주를 들이켜는 유저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시원한 탄산이 넘어갈 때마다 작게 찡그려지는 미간, 그리고 이내 만족스러운 듯 휘어지는 눈매. 그 생기발랄한 표정이, 곰팡내 나는 이 잿빛 방구석과는 지독하게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 이질감이 켄지의 속을 묘하게 뒤틀어 놓으면서도, 동시에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안도감을 끌어올렸다. 그는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희뿌연 연기가 그의 퀭한 얼굴을 가렸다가 흩어졌다.
"おっさんみたいな声出しやがって。色気もクソもねぇな。"
(아저씨 같은 소리나 내고 자빠졌네. 색기라곤 쥐뿔도 없는 기집애.)
빈정거리는 말투였지만, 그의 시선은 유저의 손에 들린 캔맥주에서 그녀의 발그레해진 뺨으로 느리게 옮겨갔다. 이자카야의 기름 냄새와 싸구려 맥주 냄새, 그리고 유 특유의 달큰한 체향이 뒤섞여 그의 폐부를 채웠다. 지독한 알코올 냄새뿐이던 이 공간에 타인의 온기가 스며드는 감각은 낯설고도 치명적이었다.
켄지는 테이블 위로 무겁게 상체를 숙였다. 구겨진 검은 셔츠 사이로 단단한 가슴팍과 흉터 자국이 언뜻 드러났다. 그는 탁자 한구석에 놓인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며 턱을 괴었다. 며칠을 감지 않아 푸석한 흑발이 그의 짙은 다크서클 위로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で、いつまで居座るつもりだ。食い終わったらとっとと帰れよ。オレは寝るんだからな。"
(그래서, 언제까지 죽치고 있을 건데. 다 처먹었으면 얼른 기어나가라. 난 잘 거니까.)
축객령을 내리는 말과 달리, 그의 목소리에는 아까와 같은 날 선 적의가 없었다. 오히려 나른하게 풀어진 저음이 좁은 방 안을 낮게 울렸다. 켄지는 남은 위스키 병을 만지작거리며 곁눈질로 유저를 살폈다. 쫓아낼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문을 열어주지도, 맥주를 꺼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자기방어적인 고독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또다시 습관처럼 엄지손톱의 거스름대를 앞니로 살짝 물어뜯었다. 불안정한 내면이 만들어낸 작은 균열이었다. 켄지의 시선이 유저의 목덜미와 쇄골 부근을 느릿하게 훑고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 온기를 취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는 애써 그것을 짓누르며 눈을 내리깔았다.
유저가 턱을 괸 채 켄지를 바라본다.
"......진짜 가요?"
켄지의 턱을 괴고 있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반쯤 감겨 있던 그의 삼백안이 느릿하게 유저를 향했다. '진짜 가요?'라는 그 짧고 맹랑한 질문 하나에, 간신히 억눌러두었던 밑바닥의 불안이 수면 위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대답 대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타들어 가는 필터 끝에서 붉은 불씨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훅, 하고 길게 내뿜어진 탁한 회색 연기가 두 사람 사이의 좁은 허공을 매캐하게 채웠다. 낡은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불안정한 빛을 뿌렸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가부키초 뒷골목의 소음마저 이 방 안의 끈적한 침묵을 깨지는 못했다.
"……本気で帰る気なら、とっくに追い出してる。 "
(……진짜 갈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쫓아냈어.)
낮고 쉰 목소리가 담배 연기에 섞여 긁히듯 흘러나왔다. 평소의 날 선 비아냥과는 다르게, 어딘가 체념한 듯한, 혹은 지독하게 피로한 기색이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켄지는 유저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를 뒹구는 빈 위스키 병을 멍하니 응시했다.
진짜 가버리면 어떡하지. 그 실없는 상상만으로도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가 마른세수를 하며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눈가에는 짙은 피로와 우울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勝手にしろ。ソファは俺が使うから、お前は適当にその辺で寝ろ。風邪ひいても知らねぇけどな。 "
(맘대로 해. 소파는 내가 쓸 거니까, 너는 적당히 그 언저리에서 자든가. 감기 걸려도 난 모른다.)
말은 그렇게 툭 내던졌지만, 켄지의 시선은 슬그머니 유저가 앉아 있는 바닥 쪽을 살피고 있었다. 차가운 장판 바닥. 얇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유저가 웅크리고 자기엔 턱없이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는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차라리 정말로 쫓아내는 편이 저 녀석을 위해서도 나을 텐데, 이 이기적인 욕심은 끝내 그녀를 밀어내지 못했다.
켄지는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다시 소파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스프링이 삐걱대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그는 습관처럼 엄지손톱을 앞니로 잘근잘근 물어뜯기 시작했다. 유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것을 마주 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좁고 더러운 방 안을 가득 채운 그녀의 체향과 샴푸 냄새를, 짐승처럼 조용히 탐할 뿐이었다.
낡은 암막 커튼의 벌어진 틈새로 늦은 오전의 볕이 날카롭게 들이쳤다. 허공을 부유하는 희뿌연 먼지들이 빛의 궤적을 따라 어지럽게 춤을 췄다. 가부키초 뒷골목의 아침은 밤의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은 대신, 쓰레기차의 후진음과 셔터를 올리는 쇳소리로 무겁게 깨어나고 있었다.
소파 위, 기형적으로 웅크린 채 얕은 숨을 내쉬던 켄지의 미간이 먼저 꿈틀거렸다. 평소라면 해가 뜨기도 전에 끔찍한 악몽과 식은땀에 절어 눈을 떴을 그였다. 하지만 간밤에는 이상하리만치 깊고 무거운 수렁에 빠진 것처럼 잤다. 코끝을 맴도는 달큰하고 낯선 샴푸 향 때문이라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바닥에서 부스럭거리는 기척과 함께 작게 하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켄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미세하게 굳어진 턱을 쓸어내렸다. 지난밤의 알코올이 채 분해되지 않아 뒷목이 뻐근했고 입안은 바싹 말라붙어 모래를 씹는 듯 텁텁했다.
그가 느릿하게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핏발이 선 탁한 삼백안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제 발치 아래 웅크려 있던 작은 형체였다.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는 유저의 무방비한 뒷모습을, 켄지는 소리 없이 응시했다. 얇은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하얀 발목이 거슬렸고, 자신의 더러운 셋방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그 태평함이 기가 찼다.
"よくこんな豚小屋で爆睡できるな、お前。"
(이런 돼지우리에서 참 잘도 잔다, 너.)
아침의 첫 목소리는 전날 밤보다 한층 더 깊게 가라앉아, 바닥을 박박 긁는 듯한 파열음을 냈다. 켄지는 상체를 일으키며 습관처럼 머리맡을 더듬어 담뱃갑을 찾았다. 구겨진 셔츠 틈새로, 흉터로 얼룩진 단단한 가슴팍이 무심하게 드러났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술에 물고 지포 라이터를 켰다. 찰칵,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주황색 불꽃이 일었다. 깊게 연기를 빨아들인 그가 천장을 향해 탁한 회색 숨을 길게 토해냈다. 아침부터 폐부를 찌르는 독한 니코틴에도 그의 표정은 여전히 나른하고 피로해 보였다.
"もう昼だぞ。さっさと帰って親父の飯でも作ってやれよ。"
(벌써 낮이다. 빨리 집에 가서 네 애비 밥이나 차려줘라.)
말은 뾰족하게 나갔지만, 켄지의 시선은 유저가 몸을 일으키는 모양새를 집요하게 쫓고 있었다. 바닥이 배기지는 않았는지,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자잘한 확인들이 연기 너머로 흩어졌다. 그는 테이블 위를 뒹구는 빈 맥주캔을 발끝으로 툭 밀어내며, 턱을 괴고 삐딱하게 유를 내려다보았다.
"아빠 집에 없거든요."
건조한 대답이 먼지 섞인 공기를 가르고 툭 떨어졌다. 켄지는 입술 끝에 매달려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빼내며,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희뿌연 햇살을 받아 어지럽게 흩어지다 천장으로 느릿하게 기어올랐다. 그의 탁한 삼백안이 유저의 얼굴에 무심하게 머물렀다. 집에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켄지는 굳이 캐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파친코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아니면 어디 길바닥에서 술에 절어 나뒹굴고 있겠지.
"親父がいないなら、なおさら帰る理由がねぇか。"
(애비가 없으면 더더욱 갈 이유가 없단 거냐.)
비아냥거리는 투였지만, 목소리 끝에 묻어나는 날은 간밤보다 한결 무뎌져 있었다. 켄지는 소파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뻐근한 뒷목을 커다란 손으로 주물렀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박힌 굳은살이 뻣뻣해진 근육을 짓누를 때마다 낮게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숙취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텅 빈 방안을 채우는 유저의 달큰한 체향과 부스럭거리는 기척이, 지독한 고독에 찌들어 있던 그의 신경을 기묘하게 어루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며 턱짓으로 좁은 부엌 쪽을 가리켰다. 싱크대 위에는 전날 밤 유저가 가져왔던 야키토리 포장 용기와 빈 맥주캔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腹減ってんだろ。冷蔵庫に何か入ってるかもしれねぇから、勝手に漁れ。オレは食わねぇけどな。"
(배고프지. 냉장고에 뭐 들어있을지도 모르니까 맘대로 뒤져봐. 난 안 먹을 거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켄지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시선은 허공을 떠돌았지만, 온 신경은 유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곤두서 있었다. 그녀가 냉장고 문을 열 때 나는 낡은 고무 패킹의 마찰음, 생수병을 꺼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 사소한 백색소음들이 켄지의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습관처럼 엄지손톱을 입가로 가져갔다가, 유저의 시선이 닿기 전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누군가 자신의 공간을 침범해 이토록 자연스럽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두려운 감각이었다.
켄지는 셔츠 단추를 두어 개 더 풀어헤치며 답답한 숨을 토해냈다. 창틈으로 스며든 햇빛이 그의 흉터투성이 가슴팍을 적나라하게 비췄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얇은 블라우스 위로 드러난 마른 어깨선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 험한 가부키초 골목을 버텨내고 있는 건지. 켄지는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정체 모를 짜증을 억누르며, 혀를 쯧 차고는 중얼거렸다.
"……いつまでそんな生活続けるつもりだ、お前。"
(……언제까지 그런 생활 계속할 생각이냐, 너.)
혼잣말에 가까운 낮은 읊조림이었다.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대답을 바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아른거리는 유저의 현실이, 밑바닥에서 썩어가는 자신의 처지만큼이나 좆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을 뿐이다.
"......글쎄요."
유저가 잠시 멈칫하며 대답했다. 이전과 달리 살짝 잠긴 목소리였다.
그 애매하고도 흐릿한 대답이 비좁은 방 안을 맴돌다 툭 떨어졌다. 평소라면 쉴 새 없이 재잘거렸을 입술에서 나온, 물기를 머금은 듯 가라앉은 목소리. 켄지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천천히 손가락 사이에 끼워 내렸다. 희뿌연 연기가 그의 거칠고 메마른 얼굴 위로 흩어졌다.
그는 유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대신 그의 탁한 삼백안은 테이블 위,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빈 캔맥주 언저리를 정처 없이 맴돌았다.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고, 덥수룩한 턱수염 아래로 턱뼈가 단단하게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속에서 뭉글거리는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향한 혐오인지, 아니면 저 작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운 채 방관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켄지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지직, 하고 타들어가는 소리가 무거운 침묵을 갈랐다.
"……そりゃねえだろ、バカ野郎。"
(……글쎄요가 아니잖아, 바보 자식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거칠었지만, 묘하게 힘이 빠져 있었다. 마치 스스로에게 내뱉는 자조 섞인 한숨 같기도 했다. 켄지는 마른세수로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손바닥에 닿는 까칠한 수염과 피로에 찌든 피부의 감각이 현실을 일깨웠다. 그는 낡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맨발로 삐걱거리는 장판을 밟으며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장고 문을 열자, 고무 패킹이 뜯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왔다. 안에는 먹다 남은 생수병 하나와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 그리고 싸구려 캔맥주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켄지는 혀를 차며 생수병을 꺼내 들었다.
"お前の人生だ。お前が面倒見ねえで誰が見るんだよ。あんなクソみてえな親にいつまで足引っ張られて生きるつもりだ。"
(네 인생이다. 네가 안 챙기면 아무도 안 챙겨줘. 그딴 쓰레기 같은 부모한테 언제까지 발목 잡혀 살 건데.)
그는 차가운 생수병을 유저 쪽으로 툭 던지듯 내밀었다. 플라스틱 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유저의 손에 닿기도 전에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適当に稼いで部屋でも借りろ。あのゴミ溜めみたいな家から這い出ろってんだよ。"
(적당히 벌어서 방이나 하나 구해. 그 거지 같은 집구석에서 기어나오라고.)
말은 모질게 나갔지만, 켄지의 시선은 유저의 창백한 뺨에 잠시 머물렀다 도망치듯 떨어졌다. 그가 할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게 고작 이런 것뿐이라는 사실이, 자신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확인시켜 주었다. 켄지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구겨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흉터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는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려다 이내 신경질적으로 탁자에 던져버렸다. 방 안의 공기가 숨 막히게 답답했다.